전통시장과 지역방송
글쓴이 : 홍보팀 날 짜 : 10-04-30 08:28 조회 : 608
전통시장과 지역방송 
[풀뿌리 닷컴] 
 
 2009년 05월 05일 (화) 02:08:31 김한민 광주방송 PD webmaster@pdjournal.com 
 
 
2년 전, 전통시장 관련 기획 코너를 담당한 적이 있었다. 전라남도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상설시장과 오일장을 돌며 그 시장의 특산물과 먹을거리, 주체하지 못할 끼나 감동어린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시장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코너의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시장 촬영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비가 오는 날, 촬영을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엔 시장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가득했고, 회사에 돌아와서는 여러 사람의 곱지 않은 시선을 뒤로하고 화장실에서 신발 바닥을 물로 씻어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훌륭한 아이템의 보고였고,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는 삶의 축소판이었다. 젊은 시절 남편을 잃고 오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시장 일을 시작했다는 나주 영산포 시장 아줌마의 눈물부터, 직접 캔 나물이니 ‘간을 턱 놓고(안심하고)’ 사가라며 막걸리 한 잔을 권하던 장흥 토요시장 할머니의 주름살 자글자글한 선한 눈매까지, 시장은 언제나 가공되지 않은 감동과 웃음을 무제한 공급해 줬다. 

우리의 전통시장을 촬영하다가 지역 방송인의 한 사람으로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전통시장과 지역방송이 서로 닮았다’는 것이다.

먼저, 전통시장과 지역방송은 ‘상품이 좋다’. 대형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싱싱한 농수산물이 전통시장의 가장 큰 장점이다. 촬영하러 간 오일장에서 사 온 과일과 채소는 며칠이 지나도 푸릇푸릇했다. 집 근처 대형 마트에서 사온 물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런 싱싱함이 우리의 전통시장 상품엔 담겨있었다. 지역방송의 프로그램 역시 상품이 좋다. 몇 년 전 지역방송협의회에 참여해 일할 때의 얘기다. 당시 협의회 소속 지역방송사 (지역민방과 지역MBC)의 정규, 특집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지역방송 대상’을 시상하는데, 심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과 얘길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로라하는 프로그램을 기획, 연출자로서 당시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던 한 심사위원이 “지역방송 프로그램이 이렇게 훌륭한 줄 몰랐다”며 연신 놀라움을 표시했다.

두 번째, 전통시장과 지역방송은 ‘지역에 밀착돼 있다’는 것이다. 전통시장에 가면 손님얼굴만 봐도 그 날 기분이 어떤지 금세 알아채는 단골 콩나물가게 아줌마가 있다. 지역방송에도 지역의 생생한 소식과 지역민의 정서를 대변해 주는 지역밀착 프로그램이 있다. 올림픽대로가 막히고 테헤란로에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보다는 광주 지역 시민에겐 백운동 로타리와 운암고가의 교통상황이 더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전통시장과 지역방송엔 치명적인(?)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통시장의 상품이 좋고 가격이 싸다는 걸 잘 아는 사람도 실제로 생필품을 살 땐, 주차하기 편한 대형마트로 간다. 지역방송의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지역의 알찬 정보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걸아는 시청자도, 막상 리모컨을 들면 유명 연예인이 나와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수도권 방송을 튼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우리 지역방송과 전통시장의 현실이다. 게다가 이런 사정이 하루 이틀 사이에 급반전 될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동네의 중형 슈퍼를 두고 굳이 남광주 새벽시장까지 가서 장을 보는 장모님의 모습에서 옅은 희망을 발견한다. 쾌적한 쇼핑환경과 깨끗한 제복을 입고 환하게 웃는 종업원은 없지만, 그곳엔 ‘나도 먹고, 이웃집 찬호 엄마도 먹을 음식’이란 생각으로 좋은 상품에 따뜻한 사람냄새를 얹어 파는 ‘나주댁, 순천댁 (남도에선 결혼한 여성을 그 출신 지역에 따라 이렇게 호칭하기도 한다)’이 있다. 바로 그곳엔 ‘사람’이 있다

잠시 눈을 돌려 우리 지역방송을 살펴보자. 회당 출연료가 기백만원 하는 유명 연예인도 없고, 수십명에 달하는 촬영 스태프도 없지만, 우리 지역방송엔 제 3자가 아닌 주민의 입장에서, 우리 이웃의 소식과 애환을 전하는 '방송사 다니는 길 건너집 김씨 아들’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뒷산이 아파트 건설한다고 허리가 잘려 나갈 때, 답답한 내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따따부따’, ‘말바우 아짐’ 같은 지역 프로그램이 있다. 

   
▲ 김한민 광주방송 PD

몇 해 전부터 지역방송의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실제로 몇몇 일들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많은 지역방송인이 “큐”를 외치는 이유!! 그것은 바로 변함없이 지역방송을 사랑해주고 때론 질책해 주는 정겨운 ‘이웃집 박씨 아저씨’가 있기 때문이다.